텔레마케터 일기

텔레마케터 일기 - 2012년 11월 22일 목요일 2번째 글 - 실적이 저조하니 밥을 굶어라?

manwon 2015. 2. 17.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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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2012년 9월 ~ 2013년 11월 사이에, 제가 텔레마케터로 일하면서 기록했던 일기입니다. 
애초에 공개할 목적이 아니고 개인적 용도로 기록한 것이라 내용이 연속적이지 않고 일관성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 전까지 일기는 '일기는 일기장에'라는 카테고리에 개인적인 일상이나 심경 등을 기록을 했었습니다.
앞으로는 대부분의 일기를 직업이라는 테마에 맞춰서 쓸 예정입니다. 
이 일기는 '텔레마케터 일기'라는 카테고리에 새로이 기록을 하겠습니다. 
현업 중인 일기는 비공개로 저장을 했다가 그 일을 퇴사한 후 해당 일기를 공개로 전환하는 방식으로 진행하겠습니다. 



2012년 11월 22일 목요일 2번째 글 - 실적이 저조하니 밥을 굶어라?



전 글이 길어져서 이어 적는다. 


실적 발표와 그에 따른 시상도 하고 새로운 상품과 콜코칭 등의 교육도 하고 굿콜이 있으면 다 같이 듣기도 하는 등 아침조회 시간은 지점 차원에서 굉장히 중요한 시간이다. 지점장이나 실장들은 활기차고 의욕적으로 조회를 이끌려고 노력한다.


반면 상담원들은 조금 여러 가지 양상을 보이는데, 신입이거나 경력이라도 항상 열심히 하는 상담원들은  좋은 자세로 경청하고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지만 그 외는 제각각 몰래 딴짓을 하는 경우도 많다. 스마트폰을 보거나 옆 사람과 소곤소곤 잡담을 하거나.


오늘 조회는 최근 지점 전체실적이 저조해서인지 그리 좋은 분위기는 아니었다. 지점장 말로는 콜을 하면서 스마트폰 게임을 하는 상담원이 있다고도 하고 업무용 회선으로 사적인 전화를 1시간 넘게 하는 상담원도 있다고 한다. 나는 업무시간 중에 다른 상담원을 관찰할 정도로 한가하게 일하는 스타일은 아니기에 그런 상담원을 본 적은 없다. 


오전 10시부터 콜을 시작했다. 몸살에 목 상태도 좋지 않다. 전산화면에 철회요청이 신규로 1건 떠 있다. 서류를 발송한 후 우편물 잘 도착했는지를 묻는 해피콜을 할 때부터 전화를 피하던 고객이었다. 큰 것 2건을 청약했던 고객이라 그대로 철회로 떨구게 되면 내게 타격이 너무 크다. 보통 오전 첫 콜부터 철회방어 콜을 하지는 않는데 조바심에 못 이겨 그 고객에게 전화를 했다.


"아니!!! 서류 받아보고 마음에 안 들면 언제고 취소해도 된다메..."


고객의 반론에 철회 방어할 의욕을 상실했다. 사실 맞는 말이기 때문이다. 철회한다는 고객을 붙잡고 2시간 넘게 통화하며 철회 방어한 경우도 있었다. 그런데 그것도 어느 정도 말이 통할 것 같은 고객에게나 가능한 것이지, 오늘처럼 분위기가 차가운 경우에는 의욕적으로 방어한다고 붙어봤자 피차 좋을 것 없다. 


아침부터 멘탈이 흔들리는데 그 순간에 또 다른 고객에게서 카톡이 왔다. 지금 전화 좀 달라고 하는데, 또 다시 심장이 쿵쾅쿵쾅 뛰기 시작한다. 이 고객도 청약하고 우편물만 받은 상태로 해피콜이 끝나지 않은 상태였다.


"아니.... 나는 꼭 하고 싶은 보험인데 우리 남편이 노발대발해서..."


계약을 진행하다가 우리 남편이... 우리 와이프가... 소리가 나오면 그 건은 물 건너갔다고 보면 된다. 가끔은 반대를 하는 배우자와 상담원이 직접 통화해서 설득시키는 경우도 있다. 그런 경우는 쉽게 말해서 굿 콜이라고 불러도 되겠지만 성공확률에 비해서 그 과정이 너무 번거롭고 비효율적이다. "당신이 우리 와이프 전화번호는 알아서 뭐하게!"라는 소리도 종종 들을 수 있다.


일단 주계약만 살리고 특약은 죽여서 보험료를 낮추는 쪽으로 유도를 했다. 배우자가 반대하는 경우는 보장이 나빠서라기보다 결국은 경제적인 문제가 원인이기 때문이다. 다음에 다시 통화할 때 결정하겠다고 하는데 아무래도 쉽지 않겠다



오전에만 2건 철회에 1건이 철회예정으로 처리되니 온몸에 힘이 빠진다. 신경을 썼더니 속도 쓰리다. 1시 30분 점심시간이 되었다.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갑자기 이석하지 말라는 큰 소리가 들린다. 오전 실적이 저조하니 밥 먹을 생각하지 말고 계속 콜하라는 소리다. 모두 열심히 콜을 해도 계약이 나오지 않는 날도 있을 것이다. 그럼 그때마다 밥을 굶어야 되는가? 혹시... 실적과는 상관없이 또 누가 근무시간에 스마트폰 게임을 한 것이 발각되어서 지점장이 열을 받은 것인가? 알 수 없었지만 이런 상황이 생길수록 하루빨리 이 일을 관두고 싶다는 마음만 더 커진다.


오후 4시가 되었을 때 갑자기 전 상담원 모두 지금 즉시 퇴근하라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오후 5시에 QA보완할 건이 있어서 남아야 한다고 하니 이유 불문하고 전 상담원 지금 즉시 모두 퇴근하라고 한다. 누가 들었다고 하는데 지점장이 계약도 못 하는 상담원들 전기값이 아깝다고 말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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