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마케터 일기

텔레마케터 일기 - 2012년 11월 14일 수요일 - 무계약

manwon 2014. 10. 3. 2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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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2012년 9월 ~ 2013년 11월 사이에, 제가 텔레마케터로 일하면서 기록했던 일기입니다. 
애초에 공개할 목적이 아니고 개인적 용도로 기록한 것이라 내용이 연속적이지 않고 일관성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 전까지 일기는 '일기는 일기장에'라는 카테고리에 개인적인 일상이나 심경 등을 기록을 했었습니다.
앞으로는 대부분의 일기를 직업이라는 테마에 맞춰서 쓸 예정입니다. 
이 일기는 '텔레마케터 일기'라는 카테고리에 새로이 기록을 하겠습니다. 
현업 중인 일기는 비공개로 저장을 했다가 그 일을 퇴사한 후 해당 일기를 공개로 전환하는 방식으로 진행하겠습니다. 



2012년 11월 14일 수요일 무계약


출근하는 버스 안.


오늘 처리해야 할 일을 대충 떠올려봤다. 요새 서류도착 여부를 문의하는 해피콜을 그냥 문자로 대신하고 있다. 서류 보면서 저랑 통화하기 편한 시간 문자 달라고 메세지를 남기는데, 그 이후로 아무 연락이 없는 고객이 꽤 많다. 철회하겠다는 말도 없고 전화를 달라는 연락도 없고 심지어는 전화를 해도 받지를 않는다.


그런 고객이 몇 되어서, 어느 순간 도미노처럼 전화가 와서 "저 철회할게요!"라고 말을 하면 어쩌지.. 라는 생각이 들면 초조해진다. 환산 건수 5건[각주:1] 밑으로 떨어지면 월급이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이 사람 하나 소심하게 만든다.


버스 안에서 다른 사람들을 둘러보면서 이 사람들은 지금 무슨 걱정을 하고 있을까 생각을 해봤다.


오전에 콜을 하던 중, 어느 정도 필요성을 느끼는 고객과 10여 분 통화를 하였다. 클로징을 시도했는데 고객은 일단 이메일이나 팩스를 요청했다. 지금 결정하시라는 내 말은 통하지 않았다.


이럴 때 상담원들은, 그래도 상품의 장점을 이해하고 서류를 보고 싶어하는 고객인데 무리하게 계약으로 당겨야 하는지, 아니면 자연스럽게 이메일, 팩스를 보내고 추후 전화를 해서 진행을 할지 고민하게 된다.  


무리하게 계약을 당기게 되면 그나마 관심 있는 고객에게 짜증을 유발해서 계약이 영영 날아갈 것 같고, 반면 이메일 등을 보내면 고객이 그것을 읽고 신뢰감이 생길 것이니, 추후 전화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실전에서, 적어도 내 경험에서는 고객이 짜증을 부리더라도 원콜로 계약을 강행하는 것이 조금 더 좋은 결과를 얻는 것 같다.[각주:2]


아니, 잘라 말해서 할 것처럼 말하고 내일 통화하자는 사람치고 전화받는 고객이 그리 많지 않다. 여하튼 그 고객과는 내일 오전 10시에 통화하기로 했다. 내일 일기에 그 결과를 기록할 것이다. 한 번 봐볼까?


점심에 RA, SK와 셋이 잠시 모여서 프로젝트 진행에 대해서 짧게 이야기를 했다. 첫 번째 마스터 스크립트 진행이 생각보다 금방 완료될 것 같지는 않다. 처음부터 너무 괜찮은 것을 만들려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어차피 실전을 통해서 다듬어 가는 것이 더 중요할 것 같다. 요번 주 중에 SK와 좀 시간을 투자해서 진행해야겠다. 스크립트와 반론은 SK와 내가 하기로 했고 사례를 모으는 것은 RA가 하기로 했다.


오늘부터 RA에게 말을 편하게 하기로 했다.




퇴근하고 동네 뒷산을 탔다. 일 년 정도 안 탔더니 실력이 형편없어졌다. 다시 다칠까 봐 사실 겁도 좀 났다. 왜 어째서 너는 실력이 점점 줄어드니?


지금 하는 텔레마케터 일도 첫 달>두번째 달>지금 이런 식이다. 환장하겠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실적이 차월이 올라가면서 줄어드는 현상이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첫 달에 신입으로 각오가 충만할 때 콜을 하다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그것이 빠져나가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일까?


신입에게 더 좋은 DB를 배정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도 상담원들 사이에서 돌고 있다. 그런데 그것을 가지고 딱히 뭐라 할 것도 아니다. 어차피 신입도 2차 월, 3차 월이 되기 때문이다. 




내일 우편물 발송을 할 때 넣을 사은품을 사러 마트에 가야 하는데, 꼼지락 하기 싫다. 거기다가 어머님께서 마트 가서 며칠 전에 구매한 할머니 내복을 큰 사이즈로 교환해오라는 미션까지 주셨다. 근데 영수증이 없다고 하시네. 엄마 영수증 없으면 교환 안 될꺼에요라고 했더니, 가서 안 되면 그냥 오렴이라고 하시니 ...


내복은 다행히 영수증 없이도 교환을 친절하게 해주셨다. 담당 직원이 웃으면서 일 처리를 하니 나까지 기분이 좋아졌다. 이런 것은 좀 배워야 한다.




마음에 들어서 살 뻔했다. 


그런데 이런 비교적 고가는 고객이 부담스러워하기 때문에 안 하는 것이 좋다.




이런 것들이 좋다. 1,000원~2,000원 정도. 포장 박스에 2~3개 넣으면 풍성해 보이고 부담도 주지 않고 괜찮다.


마트에서 사은품 등으로 쓴 돈 16,230원.




그리고 이것은 나를 위한 사은품... 


왼쪽은 알콜, 오른쪽 작은 캔은 무알콜이다. 그런데 저 무알콜 맥주 의외로 괜찮다.


텔레마테터 일을 하면서 쌓이는 스트레스를 푼다는 핑계로 맥주를 집어 왔지만, 그중 하나는 무알콜로 선택했다는 게 나도 이제 철이 들었구나...




  1. 보험 회사마다 기본급을 주는 조건이 제각각이다. 보통 80~100만원의 기본급을 받기 위한 최소한의 계약 건수에 해당하는 기준이 존재한다. 내가 다니는 곳은 환산 건수 5건이 기준이었다. 판매하는 보험 하나가 2.5건으로 환산이 되었기에 2개의 계약을 체결하면 기본급은 주는 시스템이었다. 하지만 이런 조건들은 보험회사, 시기별로 제각각이다. 한달에 2개의 계약을 하는 것이 말처럼 쉽지는 않다. 2개의 계약이 다음달 10일까지 취소(철회)되지 않고 살아 있어야 하는데, 보험 상품에 따라서 철회율이 높은 상품은 환산건수 10개를 하고도 다음달 10일 정산일에 1~2건만 살아 남는 경우도 흔하다. [본문으로]
  2. 텔레마케터 교육을 받을 때, 원콜 즉 단 한번의 전화로 계약까지 따내는 것을 대부분 권장한다. 보통 초심자가 생각하기에 고객의 성향에 맞춰서 급하게 결정하지 않고 자료도 검토하고 천천히 결정하는 고객에게는 원콜로 무리하게 진행하는 것보다 일단 알았다고 끊고 서류도 보내주고 추가 상담도 하고 그렇게 정성을 들여서 계약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을 하게 된다. 나 또한 그렇게 생각을 했었다. 또한 그렇게 정성을 들여서 계약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 추가 작업을 하는데 들어가는 정성과 시간에 비해서 계약성사율이 굉장히 낮다. 즉 그 작업을 하는 시간에 다른 신규 고객에게 원콜로 죽자 사자 대쉬하는 것이 실적이 훨씬 좋은 경우가 많다. 물론 원콜로도 계약을 잘 따내고 추가 작업으로도 잘 따내는 상담원도 없지는 않다. 하지만 내가 만약 다시 콜을 하게 된다면 후속 작업보다는 조금 무리하더라도 원콜로 당기는 방법을 선택할 것 같다. 실제로 고객의 입장에서 계약할 마음이 전혀 없더라도 상담원이 열성적으로 PR을 하는 경우 그냥 끊는 것이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경우가 많은데, 이럴 때 적지 않은 고객이 약간은 관심이 있지만 바빠서 끊게다거나, 상품은 마음에 들지만 지금 당장은 그러니 내일 결정하겠다라는 식으로 전화를 끊는 경우가 많다. 이럴 경우 고객은 계약을 할 의사가 있다기 보다는 상담원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으면서 원만하게 전화를 끊기를 원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경우 다음날 전화를 하게 되면 열에 여덟은 전화조차 받지를 않는 것이다. 또한 고객의 성향이 전화상으로 결정을 못 하고 실제 서류를 눈으로 비교하면서 신중히 결정하는 성향일 경우 주변에 얼굴을 맞대고 상담하는 설계사가 존재하는 경우가 많고 이럴 경우 텔레마케터가 그들을 상대로 계약을 따내기는 굉장히 어렵다. 주변에 관리해주는 대면 설계사가 없다고 하더라도 꼼꼼히 따지기 좋아하는 고객을 전화상으로 가입시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반면에 이런 유형의 고객들은 가입은 힘들지만 일단 가입하면 의외로 소개를 많이 시켜주는 경우도 있기는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급적이면 원콜로.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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