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마케터 일기

텔레마케터 일기 - 2012년 11월 13일 화요일 계약 1건 - 드디어 계약

manwon 2014. 9. 19. 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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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2012년 9월 ~ 2013년 11월 사이에, 제가 텔레마케터로 일하면서 기록했던 일기입니다. 
애초에 공개할 목적이 아니고 개인적 용도로 기록한 것이라 내용이 연속적이지 않고 일관성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 전까지 일기는 '일기는 일기장에'라는 카테고리에 개인적인 일상이나 심경 등을 기록을 했었습니다.
앞으로는 대부분의 일기를 직업이라는 테마에 맞춰서 쓸 예정입니다. 
이 일기는 '텔레마케터 일기'라는 카테고리에 새로이 기록을 하겠습니다. 
현업 중인 일기는 비공개로 저장을 했다가 그 일을 퇴사한 후 해당 일기를 공개로 전환하는 방식으로 진행하겠습니다. 



2012년 11월 13일 화요일 무계약 8일 만에... 드디어 !


오전에 콜을 하면서 중간중간마다 한숨만 푹푹 나왔다. 오늘도 양 옆자리에서 계약이 참 잘 나온다. 가만 들어보니 설명을 깔끔하고 힘있게 잘하신다. 조만간에 [각주:1]콜뜨기를 한 번 해봐야겠다. 특히 JM님의 [각주:2]스크립트가 괜찮다.


오늘도 사실 시작부터 DB가 쓰레기급이었다. 어떻게 내 목소리만 듣고도 "보험이죠?" 라는 신끼 있는 고객들이 그리 많은지. [각주:3]콜타임만 빨리 채우고 일찍 퇴근하고 싶은 마음만 가득했다. 오늘 받은 DB도 평소보다 더 빨리 소진해버리고 지난 DB 중에서 부재중이었던 콜을 돌리고 있었다. 지점장님이 'DB 부족하신 분들은 더 달라고 말씀하세요'라고 했지만, 왠지 DB를 더 달라고 하기도 민망했다. 요새 계약이 안 나와서 말이다. 


하여튼 그렇게 지난 DB를 돌리다가 운 좋게도 [각주:4]YES 고객을 만났다. 처음 도입에서 보험이 이미 많다는 반론이 있었는데 은근슬쩍 넘어가며 진행을 하는데 어느 순간부터 고객이 끊지 않고 귀를 기울이며 이것저것 물어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고객은 일단 서류를 받아보고 결정하겠다는 마음이어서, '일단 서류 받아 보시고 오늘부터 30일 안에 결정하면 된다'는 식의 [각주:5]철회 멘트를 날리면서 계약을 체결했다. 가급적이면 철회가 가능하다는 멘트는 쓰지 않는 것이 좋은데 요새 워낙에 계약이 안 나와서 이 고객마저 놓치면 정신상태가 붕괴 될 것 같았다.


녹취 스크립트를 읽다가 드디어 카드번호를 따야 하는 순간이 왔다. 심장이 쫄깃쫄깃해지는 순간이다.


[각주:6]"고객님 카드번호 말씀해주세요"


다행히 고객은 순순히 카드번호와 유효기간을 말해줬다. 할렐루야...


약 50여 분간의 통화가 끝나자 정신이 혼미해진다. 긴 시간 쉬지 않고 떠들면 뇌에 공급되는 산소가 줄어들기 때문인 것 같다. 마지막엔 자녀 주민등록번호를 정확히 몰라서 일단 전화를 끊고 10분 후에 다시 전화해야 했다. 주민등록번호 적힌 서류를 찾고 전화를 다시 하기로 했는데 내심 불안했다. 결제 부분까지 진행된 후에도 자녀 주민등록번호를 불러주기 싫다며 계약이 진행되지 않고 철회되는 경우도 종종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 문자메시지로 주민등록번호를 확인했다며 전화를 달라고 한다. 



전산으로 청약을 올리고 시계를 보니 2시가 넘었다. 점심을 계속 제때에 못 먹게 된다. 요새. 밖으로 나와서 중국집에서 볶음밥을 먹었다.


다시 사무실로 돌아와서 SK와 [각주:7]마스터 스크립트에 대한 의견을 나누고 초안과 [각주:8]반론에 대한 의견을 나누었다.



계약을 1건 해서 그나마 좋았지만 11월 초 계약 1건이 [각주:9]반송이 들어왔다. 

아미타불....




  1. 콜뜨기는 다른 사람의 굿콜이 녹음된 파일을 들으면서 그대로 옮겨 적는 것을 말한다. 지점에서 콜뜨기를 해서 나눠주는 경우도 있고, 계약이 잘 안 나올 때의 징벌적 차원으로 숙제 등으로 상담원 등에게 시키는 경우도 있다. 이게 생각보다 꽤 시간이 걸린다. [본문으로]
  2. 스크립트는 말 그대로 대본이다. 대충 표현하자면 도입-이벤트 혜택-상품안내 - 사례제시 - 주요 반론 대비 멘트 - 클로징으로 나뉜다. 기본 스크립트는 지점에서 기본적으로 나눠준다. 이것만 그대로 앵무새처럼 읽어도 계약이 잘 나올 때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 자신에 맞게 수정해서 쓰는 경우가 많다. 별도로 녹취 스크립트라는 것도 있는데 이것은 청약을 하기로 한 고객에게 주소, 주민번호, 마케팅 동의, 건강상 고지 사항, 결제 정보 등을 고지하며 때에 따라서는 예, 아니오 등의 고객 답변도 녹취하는 대본이다. 녹취 스크립트도 A4 용지로 5장 정도 된다. 스크립트(상품설명) + 녹취 스크립트(청약진행) 모두 원콜로 성사시킬 경우 통상적으로 50분 정도 소요되었다. [본문으로]
  3. 콜타임은 하루에 달성해야 할 시간이다. 링타임 즉 고객이 전화를 받기 전에 신호가 가는 순간까지 콜타임으로 포함하는 경우도 있고 신호가는 순간을 제외하고 순전히 대화시간만 인정하는 경우가 있다. 링타임을 포함하는 경우 보통 하루에 3시간 30분 정도의 콜타임을 채워야 한다. 계약이 잘 나오지 않아서 미친듯이 할 때는 콜타임이 4시간 5시간 나올 때도 있다. 물론 퇴근 시간 이후까지 하는 경우도 있고. 이 정도 하면 꽤 힘들다. [본문으로]
  4. 별다른 반론 없이 그냥 예.. 예..하다가 계약할께요로 진행되는 고객을 말한다. 보통 카드나 계좌번호를 물을 때 불안한 마음에 갑자기 끊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그런 정보까지 바로 알려주는 고객을 말한다. [본문으로]
  5. 철회 가능 멘트는 보험회사에 따라서 아예 사용을 금하는 곳도 있다. 청약을 하고 30일 내에 철회를 하게 되면 소비자 입장에서 결제된 부분이 없던 것으로 원위치 되기 때문에 일단 우편물을 일주일 내로 발송할테니 서류 보고 나서 최종 결정하시라는 식으로 진행을 하는 경우가 꽤 많다. 너무 심하게 쓰지만 않으면 철회 멘트의 사용을 눈감아 주는 곳도 있다. 우편물에 각종 사은품을 넣고 상품에 대한 청약서 약관 등을 정성껏 포장해서 보내면 의외로 계약을 유지하는 경우가 많다. 우편물은 상담원이 직접 포장하고 발송하는 경우도 있고 보험회사 차원에서 자동으로 발송되는 경우도 있다. 보험회사마다 차이가 있다. 상담원이 발송하는 경우 택배비 2,500원 정도는 상담원 자비로 처리한다. 이 경우 우편물 발송도 꽤 시간을 많이 쓰는 일이 된다. [본문으로]
  6. 초보 상담원의 경우 고객의 카드번호, 유효기간 등을 받을 때 고객을 놓치는 경우가 많다. 상품이 너무 좋다고 호응을 하던 고객도 막상 카드 번호를 물으면 사기 등의 의심으로 인하여 돌연 전화를 끊어버리거나 청약을 미루려는 경우가 많다. 상담원에 따라 이런 것에 대비한 여러가지 방법을 쓴다. 고객의 카드번호 등을 받을 때는 오히려 조금 더 큰 목소리로 떳떳하고 힘차고 당연하다는 듯이 말을 해야 고객의 불안함을 분산시킬 수 있고 청약을 온전히 진행할 수 있다. 그래도 가장 힘든 부분 중의 하나다. [본문으로]
  7. 마스터 스크립트는 내가 고안한 것이다. 거의 모든 반론에 대한 대비 멘트와 거의 모든 사례를 아주 큰 종이 한 장에 작은 글씨로 집대성하려 했다. 거기에 추가로 고객의 연령별, 성별로도 각각의 경우를 고려한 마스터 스크립트를 만들려 했었다. 하지만 추후 스터디가 멤버들 개인 사정으로 흐지부지 되면서 중도 포기한 프로젝트. [본문으로]
  8. 반론의 종류는 바빠요, 회의중이에요, 운전중이에요, 보험은 전화로 가입 안해요, 보험이 이미 많아요, 식구가 보험 설계사에요, 요새 형편이 어려워요 등등 고객이 전화를 끊으려 할 때 상담원이 말하는 멘트라고 보면 된다. 가장 많이 쓰는 반론 중의 하나가 사오정 기법이다. 예를 들어서 고객이 "바빠 죽겠는데 왜 전화질이야!"라도 화를 냈을 때 "아 고객님 오늘 날씨 너무 좋죠. 지난번 전화 드렸...", 다른 방법으로는 앵무새 기법으로 "요새 형편이 어려워요"라고 고객이 말하면 "그렇죠. 요새 형편이 어려우실꺼에요. 저도 요새 불라불라, 어려우실수록..." 여러가지 방법이 있지만 절대적인 방법은 없다. 고객이 다 제각각의 성향이기 때문. [본문으로]
  9. 보험회사 차원에서 청약을 취소하는 것이라고 보면 된다. 예를 들어서 건강상, 동일 보험이 너무 많이 가입되었거나 하는 등의 이유로.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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