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마케터 일기

텔레마케터 일기 - 2012년 11월 9일 여전히 무계약 - DB 앞에 장사 없다.

manwon 2014. 6. 25. 2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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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2012년 9월 ~ 2013년 11월 사이에, 제가 텔레마케터로 일하면서 기록했던 일기입니다. 
애초에 공개할 목적이 아니고 개인적 용도로 기록한 것이라 내용이 연속적이지 않고 일관성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 전까지 일기는 '일기는 일기장에'라는 카테고리에 개인적인 일상이나 심경 등을 기록을 했었습니다.
앞으로는 대부분의 일기를 직업이라는 테마에 맞춰서 쓸 예정입니다. 
이 일기는 '텔레마케터 일기'라는 카테고리에 새로이 기록을 하겠습니다. 
현업 중인 일기는 비공개로 저장을 했다가 그 일을 퇴사한 후 해당 일기를 공개로 전환하는 방식으로 진행하겠습니다. 




2012년 11월 8일 목요일 무계약 4일차.



아침에 출근하는데 안개가 자욱하다. 

계약이 4일째 나오지 않고 있다. 자신감도 사라지고 있고 목도 아프다. TM 경력이 꽤 있고 실력도 좋은 [각주:1]SU누나도 최근에 15일 동안 계약이 나오지 않고 있다. 


내가 무능력한 사람인가 하는 느낌은 정말 좋지 않다. 

솔직히 DB 앞에 장사 없다. DB란 전화 동의를 한 고객명단이라고 보면 된다. 매일 신규 DB를 50~100개 정도를 받는데, 말이 신규 DB이지 몇 개월 전 단위로 이미 한 번 이상 전화가 갔던 고객 명단인 경우가 많다. 고객이 재전화를 하지 말라고 엄포를 넣지 않는 한 3개월 혹은 6개월 이후 전화가 다시 가게 된다. 

보통 고객들이 전화를 끊을 때 '바빠서 나중에요', '회의 중이니 이따가 주세요' 라고 말을 하는 경우가 많다. 사실 엄밀히 따지면 이런 경우는 거부의 의사로 봐도 무방할 것이다. 하지만 나중에 전화 달라는 고객의 말을 기록하고 그 명단을 마케팅 거부로 돌려버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결국 상담원 차원에서 며칠 후 다시 전화를 하거나, 그렇지 않은 경우 전산 상에서 몇 개월 후 신규 DB형식으로 다른 상담원에게 다시 배정이 되게 된다. 면전에 대고 '안 할래요', '앞으로 전화하지 마세요'라고 상담원에게 직접적으로 말을 하는 경우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결국 한 번도 돌리지 않은 신규 DB는 당연히 계약율이 높을 수 밖에 없고, 여러 번 돌려진 DB일수록 상품에 관심이 없거나 전화 연락이 되지 않는 경우만 남아 있기 때문에, 계약을 뽑아 내기가 쉽지가 않다. 하지만 똑같은 지점 내에서 똑같은 DB를 가지고도 잘 하는 사람은 여전히 잘 한다. 핑계를 대면 한도 끝도 없다. 그럴 시간에 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지금 현재 내가 근무하는 지점은 오전 9시 30분부터 1시 30분까지 업무를 진행하고 그 후에 점심 시간을 1시간 정도 갖는다. 그런데 최근에 오전 실적이 저조하거나 하면 근무 시간을 자꾸만 뒤로 연장하는 일이 종종 발생한다. 오늘은 오후 3시까지 점심도 먹지 못하고 연장 근무를 했다. 

지점 차원에서 텔레마케팅 일이라는 것이 어느 정도는 독기도 필요한 것이고 악착스러운 근성도 필요한 것이다라고 상담원 스스로 느끼게끔 어느 정도 채찍질을 가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는데, 점심 먹는 그 알량한 시간 갖고 압력 조절을 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전 상담원이 열심히 해도 계약이 안 나올 수도 있는 것이 당연하다. 그럼 그럴 때마다 밥을 굶길 셈인가?

많은 상담원을 관리하는 차원에서 어쩔 수 없는 고육책일 수도 있다. 사실 집에서 놀다가 소일거리로 힘들지 않고 용돈 좀 벌어볼까 하고 안일한 마음으로 시작하는 상담원도 많다. 그리고 일하는 업무 시간에 일을 하지 않고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하거나 쇼핑을 하는 상담원도 많다. 하지만 그와 반대로 정말 죽어라 하는 상담원도 있다. 자기가 한 만큼만 가져가는 영업직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상담원은 자신의 능력치 내에서 정말 열심히 고생하며 노력을 한다. 그런데 밥까지 못 먹게 하면, '나는 밥값도 못하는 존재인가?'라는 자괴감이 들게 마련이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날은 집에 오면 유독 단 음식이 땡긴다. 퇴근하고 잠을 자다가 중간에 몇 번 깨면서 요구르트를 마셨는데, 저렇게 많이 먹었다.




  1. SU누나는 정말 열심히 콜을 하는 상담원으로 기억한다. 계약실적은 편차가 큰 편이었는데, 보름이고 한 달이고 계약이 안 나올 때도 있고 하루에 여러 계약이 쏟아져 나올 때도 있었다. 목소리는 큰 편은 아니었고 고객과 금새 친해지는 스타일도 아니었다. 대신 열심히 설명하고 내용 전달하는 편이었고 티를 잘 내지는 않지만 일을 할 때 성격이 예민해지는 경우도 있었던 것 같다. 1년 정도 근무하고 퇴사를 했고 그 다음날인가 바로 다시 출근하면서 퇴사를 취소했다가 몇 일만에 다시 퇴사를 한 것으로 알고 있다. 스트레스를 좀 많이 받아서 힘들어서 관뒀다가 그래도 좀 벌어야지 하고 큰 맘 먹고 다시 출근했다가 도저히 아니다 싶어서 다시 퇴사한 것으로 알고 있다. 상남자 + 훈남의 배우자를 두고 있는데 배우자의 사업이 고비를 겪을 때 SU누나의 텔레마케터 수입이 가계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는 것 같았다. 퇴사 후 다른 TM 일을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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