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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단기프로젝트009 - 맥주와 담배로 민달팽이 퇴치하기

manwon 2015. 1. 6.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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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단기프로젝트009 - 맥주와 담배로 민달팽이 퇴치하기 ▒

 


"안녕~ 나는 민이라고 해~"


작년에 거실 쇼파에서 누워 자고 있는데 아랫입술 쪽으로 뭔가 도톰, 묵직, 끈적한 것이 떨어지더군요. 잽싸게 손으로 떼어내고 보니 위 사진에 나온 '민달팽이'라는 녀석이었습니다. 화초나 장독대 같은 곳에 서식하는 달팽이의 일종이라는 것을 검색을 통해서 확인하고, 우리 집에 화초도 많이 있으니 그냥 그러려니 했습니다. 유쾌하지 않은 느낌을 주는 놈이지만 1~2마리 정도야 생각했었죠.


그런데 며칠 전 새벽 앞 베란다 문을 열었을 때 크고 작은 민달팽이 수십 마리가 바닥과 벽과 창문에 붙어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왜냐구요?


징그러워서요...


밤 중에 노인네가 보고 놀라서 넘어질 수도 있을 것이고 화초도 갉아 먹는다고 하고... 조금 많이 징그럽기도 하고... 그래서 일단 나무젓가락으로 모두 잡아서 처리했습니다. 죽이지는 않고 집에서 멀리 떨어진 풀숲에 방생했습니다. 


그런데 이 놈들을 잡을 때 몸을 움츠리면서 끈적한 무슨 액을 분비하는데 이게 나중에 본드처럼 딱딱하게 굳더군요. 나무젓가락이 거의 못 쓰게 될 정도였습니다. 혹시 모르니 손으로 잡지 않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대략 스무 마리 정도는 족히 포획을 했고 그 날은 더 이상 눈에 띄지 않았지만, 자웅동체인 녀석의 특성상 이번 기회에 씨를 말리지 않으면 나중에 또 징글 징글한 경험을 하게 될 것 같더군요. 그래서...


초단기 프로젝트 009 - 민달팽이 포획하기 프로젝트 발동 !!!    두~ 둥~~     .

 

 

검색을 해 보니 민달팽이를 퇴치하는 약품 같은 것도 판매를 하더군요. 그런데 굳이 약품을 사지 않더라도 맥주와 담배를 이용해서 유인, 포획하는 방법이 있더군요. 민달팽이는 맥주 냄새를 기가 막히게 잘 맡고 좋아하는 특성이 있다고 합니다. 대략적인 방법은 아래와 같습니다.



*** 맥주와 담뱃잎으로 민달팽이 포획하기 ***


1. 맥주 50ml 정도에 1개비 분량의 담뱃잎을 섞는다.

2. 1을 그릇에 옮긴 후 민달팽이 출몰 지역에 놓는다.

3. 새벽이나 아침에 그릇에 모인 민달팽이를 잡는다



집 앞 베란다입니다. 

화초가 꽤 많은 편인데 그런 환경이 민달팽이가 생기게 된 원인이 된 것 같습니다. 




그릇을 준비했습니다. 

턱이 너무 높아서 민달팽이가 접근하지 못하지 않을까 생각도 잠시 했습니다. 

하지만 90도의 벽을 타고 오르는 것은 기본이고 천장에 거꾸로 매달려도 떨어지지 않고 갈 길 가는 놈들이라 위 그릇 정도는 쉽게 타고 오를 것입니다.




마침 집에 먹다 남은 김 빠진 맥주가 있네요. 

100ml를 컵에 따르고...




마침 지난 주 집에 들렀던 형이 놓고 간 담뱃갑에서 2개비를 챙겨서...




섞었습니다. 

맥주 100ml + 담배 2개비




민달팽이는 습하고 그늘진 곳에 있다가 새벽에 슬금슬금 기어나옵니다. 

맷돌이나 장독대 밑이 그 서식지일 확률이 많다고 하네요. 

그래서 맥주+담배 용액을 맷돌 근처에 놓았습니다.


왠지 덫을 놓고 잠복하는 사냥꾼의 심정이 느껴지면서 심장이 쫄깃 쫄깃해집니다.




겨울이라 화초 일부는 거실로 들여놓았습니다.

상황 봐서 조만간 거실에도 덫(!)을 놓을 예정입니다.

대략 오후 4시 이전에 모든 셋팅이 끝났습니다.

이제 일상으로 돌아가 생활하다가 때를 기다리면 됩니다.


아... 이거 은근 기대되는데요. 

솔직히 이 때 머릿속으로 민달팽이를 양식해서 많은 수를 키우다가 맥주 용액 덫으로 포획할까하는 악마적인 생각도 잠시 들었습니다. 


그래서는 안되겠죠~



 

날은 어두워지고...

이 때가 저녁 7시 52분. 

아직 별다른 조짐은 없습니다.




맥주 + 담배 용액의 위치를 조금 옮겼습니다. 

앞 베란다의 배수구 파이프 쪽입니다. (사진의 1시 방향)




새벽 01시 34분입니다. 


작년 거실에서 누워 자다가 제 입으로 떨어진 민달팽이를 처음 봤을 때나 며칠 전 수십마리를 잡았을 때나 모두 새벽 1시는 충분히 넘은 시각이었습니다. 그렇기에 민달팽이의 활동 시각은 새벽 1시 이후라고 추측을 할 수 있겠죠.



 

새벽 01시 35분...

떨리는 마음으로 접근합니다.




오... 민달팽이 성체 1마리가 보이네요. 




성체는 그릇을 넘어서 맥주와 담배의 향을 즐기고 있습니다. (사진 왼쪽 화살표)

오른쪽 화살표는 아직 덜 자란 민달팽이 새끼입니다.




여기도 민달팽이 새끼 한 마리...

아파트 층 전체를 관통하는 배수구 파이프 주변도 습하고 축축한 곳이라 그런지 이 곳도 민달팽이의 서식지로 의심이 듭니다.




정신 못 차리고 있는 민달팽이...

담배와 맥주에 탐닉하는 상남자 같지만...

실상은 자웅동체...




미안하지만...이제 잔치는 끝났다....




나무젓가락으로 포획한 후 크기 비교를 위해서 종이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으라차차... 스트레칭을 하니 생각보다 꽤 크죠.




성체와 새끼의 크기 비교 샷...

이 놈들도 멀리 떨어진 풀숲에 방생했습니다.




새벽 02시 50분에 다시 앞 베란다로 나왔습니다.

더 이상 큰 놈은 보이지 않고 새끼 한 마리만 보이는군요.




새벽 03시 31분 마지막으로 포획한 민달팽이 새끼입니다.



이 날 이후로 더 이상의 민달팽이는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다음날 거실에도 맥주+담배 용액을 놓았지만 한 마리도 발견되지 않았고요. 한 달 정도 후에 다시 한 번 덫(!)을 놓아볼 예정입니다. 


일단 조금 의외였던 점은 민달팽이 새끼는 맥주 용액에 그다지 반응을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동 속도가 성체에 비해서 떨어져서 그런 것인지 아직 그릇의 턱을 기어 올라갈 능력이 안되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민달팽이 새끼 한 마리를 잡은 후 맥주 용액 근처에 놓고 잠시 후 다시 돌아와 관찰을 했었는데, 용액으로 향하지 않고 다른 방향을 향하고 있더군요. 







아... 미성년자는 술 못 먹지....






초단기 프로젝트 009 -민달팽이 퇴치하기 끝~!!!



하려다가...


글을 거의 다 작성하고 문득 든 생각에 약간 소름이.....


무슨 예기냐면... 제가 글 처음에 작년 거실 쇼파에 누워 자고 있을 때 민달팽이가 천장에서 제 입술로 떨어졌다고 했었죠. 저는 한동안 '왜 하필 내 입술로 떨어졌을까' 하는 의문을 갖고 있었습니다. 바닥에서 2미터가 넘는 벽을 수직으로 올라서 쇼파가 있는 곳까지 천장에 거꾸로 붙은 채 3미터를 기어 온 놈이 힘이 부쳐서 떨어진 곳이 하필 내 얼굴 위 입술이었을까요...


근데 이 놈들이 맥주 냄새에 환장한다고 했죠. 제가 평소에는 방에서 자는데 가끔 술 마신 날 거실 쇼파에서 잡니다. 그러니까 그 놈은 그 날 제 입에서 나는 맥주 냄새를 향해서 최소 5미터를 수직으로 오르고 천장에서 거꾸로 붙은 채 전진하다가 딱 제 입술 위로 떨어진 것이죠. 약간 소름이....


입이라도 벌리고 자고 있었더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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