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한도전 (2019년 이전)/04 초단기 프로젝트 모음

초단기프로젝트007 - 한밤중에 동네 뒷산 다녀오기

manwon 2014. 1. 17. 13:52
반응형


동네 뒷산 한밤중에 오르려니...



지난 번 포스팅[링크]에서는 2013년 12월 31일, 한 해의 마지막 날 집에서 쓸쓸히 술 한 잔 하는 내용을 기록했었죠. 맥주 500cc 한 캔에 청하 드라이 2 병을 마시고 적당히 취기가 오른 상태...

평상시 같으면 얌전히 이불 펴고 잠들었을텐데, 2013년 한 해의 마지막 날이라 그런지 그냥 잠들기가 아쉽더군요. 

2013년 12월 31일 화요일 밤 9시 50분




자전거에 달린 후레쉬를 분리해서 불이 잘 들어오는지 확인을 하고...




집을 나섰습니다. 




목적지는 집 근처에 있는 야산...

그리 높지 않은 야산이지만, 일단 초입을 지나면 가로등이나 하는 것이 전혀 없고 나무가 빽빽한 편이라 혼자 산행을 하기는 쉽지 않은 코스입니다. 작은 야산이기는 하지만 면적이 꽤 넓은 편이고 큰 산과 연결이 되어있기에 멧돼지나 들개 같은 야생동물과도 마주칠 수 있을 것입니다. 거기다가 눈까치 쌓여있고 빙판이 많기에 그냥 운동화에 후레쉬 하나, 그리고 스틱 하나 들고가는 것은 좀 무모한 짓 같기도 했습니다.

 



거기 다녀온다고 누가 상을 주는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그런데 왠지 저에게 적당한 자극이 필요했던 것 같습니다. 약간의 두려움이 저를 더 설레게 하더군요. 물론 큰 베낭 홀로 메고 깊은 산중에서 하룻밤 묵는 비박을 하시는 분들도 있으시겠지만, 그렇지 않은 저로서는 캄캄한 산을 홀로 오른다는 것이 충분히 심장이 벌렁벌렁...




점점 오르막 길이 나오고...




야산의 초입입니다. 

어두운 환경에서 핸드폰 카메라로 찍은 것이라 사진이 형편없습니다. 


그래서 막상 산 속에서 찍은 사진은 한 장도 없습니다. 몇 번 시도를 해 봤는데 어두워서 당연히 아무것도 찍히지 않더군요. 카메라 후레쉬를 터뜨리면 될텐데, 좀 창피한 예기지만 평상시 OFF로 설정된 것을 ON으로 해야지라는 생각 자체를 하지 못했습니다. 

오르막길 전체가 빙판이 많아서 손에 쥔 자전거 후레쉬로 땅을 비치면서 올라가는 것만 해도 신경을 곤두세워야 했습니다. 

달빛 하나 없는 산 중에서 혼자 헉헉 대면서 후레쉬 하나에 의지해서 올라가는데 주위는 시커먼 하늘과 그것보다 조금 더 시커먼 큰 수목들의 실루엣, 그리고 어렴풋하게 하얗게 보이는 흰 눈길뿐이었습니다. 

사실 오르기 전에 '귀신이나 그런 것이 무섭지는 않을꺼야. 난 다 큰 어른이고 그런 것은 믿지 않거든. 조심해야 할 것은 아마도 큰 멧돼지나 미친 들개 정도 되겠지...' 라고 생각을 했습니다만, 막상 야밤에 산 중에 홀로 남겨지니 저 어두운 곳에서 끔찍한 귀신 같은 것이 확 튀어나오지는 않을까 하는 무서움증도 생기더군요. 

집에서 마신 술은 이미 다 깼습니다. 무사히 야산을 횡단하고 반대편 국도변으로 내려오니 마음이 조금 편해집니다. 

복귀하는 길은 지금까지 걸어온 산길을 다시 되돌아가는 길이 있고, 산을 우회하는 국도로 돌아가는 방법이 있는데 저는 2번째 방법을 택했습니다. 이제 그만 무섭고 싶었습니다. 하하하...




그런데 제가 야산을 내려와서 국도변으로 향할려고 하고 할 때, 야산과 이어진 큰 산에서 그 시간에 평상복 차림으로 후레쉬 하나 없이 내려오는 한 남자가 있었습니다. 

나이는 40대 초반 정도로 보였는데, 이 시각에 등산복 차림이나 등산 장비 없이 그 큰 산에서 내려 온다는 것이 조금 이상하게 느껴지더군요. 상대방도 저를 보고 아마 그랬을 것 같은데, 이 남자가 넓은 길을 저를 지나치면서 내려가는데 필요 이상으로 제 근처로 접근해서 내려가더군요. 

다행히 별 일은 없이 제 곁을 스치듯 국도변으로 내려가더군요. 위의 사진처럼 어두운 곳이라 함께 내려가기도 뻘쭘하고 해서 조금 쉬는 척 한 후 잠시 후 저도 국도변으로 내려갔습니다. 




가로등은 거의 없지만 차들이 종종 지나가는 길이라 마음은 한결 편합니다. 




버스 정류장을 지날 때 쯤에 장갑 한 쪽을 잃어버린 것을 알게 됩니다.

저는 잃어버린 것이 있으면 꼭 찾으려는 성격입니다. 그래서 다시 산 쪽으로 돌아가는데, 집에서 나온지 시간도 꽤 흘렀고 술을 마신 것이 다 깨기는 했지만 피곤하기도 했고 무엇보다 산으로 향하는 길에서 죽어 있는 큰 고양이를 본 후 '괜한 욕심 부리지 말자' 하고 다시 집으로 향했습니다. 




사실 오늘 야간 산행은 좀 무모한 짓이었다는 판단이 듭니다. 

무엇보다도 빙판길에 취약한 운동화라 산 중에서 미친 개라도 만났더라면 도망칠 수 조차 없었기 때문이죠. 

요새 반복되는 무기력에 제 스스로 자극을 주기 위해서 다녀온 산행이었고 나름 두려움을 잘 극복했다는 생각도 들지만, 최소한 눈길이 쌓인 밤 산행은 자제해야겠다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연말에 혼자 뭐하는 짓인가 모르겠네요. 하하하...

 


집까지 돌아오는데 대략 2시간 조금 안 되게 소요되었습니다. 따뜻한 집에 돌아오니 편하게 누울 내 공간이 있다는 것이 정말 고맙게 느껴지더군요. 

마지막으로 산행에 대한 전문적인 장비나 지식 없이 홀로 산행하는 것은 정말 위험한 행동이라는 것을 이번에 저도 깨달았습니다. 준비 없는 무모한 야간 산행은 절대 하시지 마시길 바랍니다. 

이상 2013년도 마지막 뻘짓거리에 대한 기록이었습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