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는 일기장에

[일기] 강남으로 전학 갔던 친구가 갑자기 찾아왔던 기억

manwon 2021. 7. 28. 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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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7월 27일 화요일 - 강남으로 전학 갔던 친구가 갑자기 찾아왔던 기억


아마도 국민학교 4학년 때 같다. 그 당시 내 인생은 스스로 생각하기에 참 만족스러웠다. 집에서도 행복했고 학교생활도 즐거웠다. 당시 단짝 친구가 여럿 있었는데 그중에서 남씨 성을 가진 아이와 참 친했다. 이 친구는 항상 유쾌해서 좋았다. 재미난 일이 생기면 몸을 꼬며, 마치 따발총처럼 '뜨하하하' 웃곤 했다. 그때마다 처진 눈에서 입가까지 생기는 주름이 인상적이었다. 돌출된 입이 다소 큰 편인 걸 빼면 탤런트 선우재덕 씨의 웃는 모습과 비슷했다.


이 친구가 어느 날 갑자기 강남으로 전학 간다는 소리를 했을 때, 나는 몹시 낙담했다. 지금이야 그의 전학을 '강남 8학군 열풍'이라는 시대적 키워드로 이해할 수 있게 됐지만, 그때는 강남이 어딘지도 모를 나이였다. 계속 연락하며 친구로 지내자는 지키지도 않을 약속은 아마도 그의 입에서 먼저 나왔던 것 같다.


1년 정도 시간이 흘러, 선선한 가을 일요일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대문 벨 소리가 띵동띵동 울려 밖으로 나가니 반갑게도 그 친구가 서 있었다. 서둘러 계단을 내려가 대문을 열고 친구를 반겼다. 친구를 집으로 들어오게 한 후 이야기를 좀 나누다 야구 글러브와 방망이를 챙겨서 공터로 가야겠다 혼자 속으로 생각했지만, 내가 뭐라고 입도 열기 전에 그의 큰 입이 먼저 열렸고, 따발총처럼 그의 수다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나 잠깐 들른 거야”
“야 강남 애들 노는 거 장난 아니야. 자앙난 아니라니깐”
“오늘 친구들하고 여자친구들하고 어디 가다가 잠깐 들른 거야”
“야 강남은 여기하고는 비교도 안 돼”
“이 옷 멋지지? 이게 강남 스타일이야”


그는 나의 안부는 전혀 물어보지도 않은 채, 삐딱이 서서 다리를 꼬고 오른쪽 어깨는 초인종이 붙어 있는 대문 돌기둥에 기댄 채 일방적으로 떠들기 시작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 친구는 자신을 자랑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날 그가 입은 옷은 소위 강북 애들은 접해 보지도 못했던 뭔가 새로운 것이었다. 골덴바지와 청바지, 티셔츠, 그리고 청재킷이 전부였던 나에게 그의 옷차림은 다소 충격적이었다. 아니, 그냥 좀 우스꽝스러워 보였다고나 할까. 헐렁한 듯 펄럭이는 유니섹스 스타일의 옷은 온통 무지개떡 색이었다. 여하튼, 그의 까무잡잡한 피부와 큰 입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그의 웃음은 더는 예전처럼 “뜨하하하”로 들리지 않았다. 기억이 정확하지는 않지만, 시종일관 자기 자랑을 떠들다 간간이 “크크크크” 혹은 “낄낄낄낄” 웃었던 것 같기도 하다.


덤프트럭이 모래를 한가득 내려놓고 떠나듯이 그도 그렇게 자기 자랑만 하다 떠났다. 그 당시 나는 그 상황을 뭐는 뭐다는 식으로 구체적인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그냥 어이가 없고 조금 많이 섭섭한 느낌이었지만 며칠 사이로 잊었던 것 같다. 친구 사이에도 시기와 질투, 경쟁심이 있고 겉으로는 친한 척하지만, 막상 가까운 친구가 자신보다 성공하는 걸 원치 않을 때도 있다는 걸 나는 한참 후에나 알게 되었다. 나는 그 친구보다 항상 공부도 더 잘했고 운동도 더 잘했는데 그걸 가지고 내가 은연중에 나도 모르게 그에게 잘난 체를 했고, 그게 그의 마음에 상처를 남긴 건 아니었을까, 그래서 그가 그날 그렇게 그랬나 하는, 그런 생각도 좀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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