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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이토 준지의 센서 & 몸살의 추억

manwon 2020. 10. 13.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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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 준지가 그린 '센서'라는 제목의 만화를 교보문고에서 9,000원에 구매했다. 이토 준지의 만화를 처음 접한 게 대충 10년은 넘은 것 같다. 그때 첫 느낌은 'B급 감성인데 꽤 괜찮다' 정도. 중학교 때 본 '드래곤볼'이나 '슬램덩크', 성인이 돼서 본 '사채꾼 우시지마'처럼 확 빠져드는 수준은 아니지만, 이토 준지 만화는 나름 묘한 매력이 있다. 그래서 기회 있을 때마다 즐겨 보게 됐던 것. 

사춘기 이전에 편도선염이나 감기몸살로 동네 병원에 갈 때가 많았다. 한 번 앓기 시작하면 39도가 넘는 고열로 헛것이 보일 정도로 꽤 고생했다. 갑자기 그 얘기를 왜 하냐면, 그 당시 다니던 동네 병원이 꽤 낡고 오래된 곳이었는데, 그 독특한 분위기가 이토 준지의 만화를 볼 때면 조금씩 떠오르듯 느껴지기 때문이다. 왜 있잖아, 아주 오래된 기억이 떠오를 때 느껴지는 그 현기증 같은 느낌. 그런 느낌이 그의 만화를 볼 때면 가끔 느껴진다고나 할까.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고열로 정신이 혼미해지며 마지막으로 본 헛것은 아주 늙은 마녀 여럿이 빗자루를 타고 깔깔대며 날아다니던 모습이었다. 안방에 누워 머리에 얼음물을 적신 수건을 얹고 창문을 보고 있었는데 그때 창문에 비친 그 마녀들의 실루엣이었다. 그때 느낀 극한의 공포는 고열로 인한 고통과 더해져 차라리 몽환적이었다.

그렇게 고열을 앓을 때는 이 고통이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다 결국 회복이 되면  마치 세포 하나하나가 죽었다 부활하는 듯한 쾌감을 느꼈다. 마치 온몸의 세포 하나하나에 묻었던 찌든 때가 냉수마찰을 하며 싹 씻겨져 내려간 느낌이라고나 할까. 마치 저세상에서 죽었다가 이 세상에서 다시 태어난 듯한 느낌이라고나 할까. 신선한 바람에 몸이 붕 뜨는 듯한 느낌이었다. 목욕탕 몇 번 다녀오면 키가 자라던 시절이라 가능했던 얘기다. 

이런 고열과 세포 단위의 부활 이벤트는 중학교 3학년을 마지막으로 끝났다. 마치 내 몸의 면역력 업데이트가 모두 완료된 것처럼 웬만해서는 감기나 몸살에 걸리지 않는 체질이 됐다. 어쩌다 감기 비슷한 게 온 것 같다가도 그냥 약하게 앓다가 회복되었다. 이토 준지의 그 기괴하고 음습한 느낌의 만화를 보면 어렸을 적 그 동네 병원과 고열의 고통, 그리고 그 유사 부활의 쾌감이 떠오른다. 그래서 가끔 그의 만화를 보게 되는 것.


이토 준지의 센서(SENSOR) 앞.


이토 준지의 센서(SENSOR) 뒤.

 

그림체가 뭐랄까.... 좋게 얘기하면 깔끔해졌고 솔직하게 말하면 예전 특유의 매력을 다소 잃은 듯하다. 대충 검색을 해보니 요새는 디지털로 작업한다고 하는데 그게 원인인 듯. 

이번 작품은 무려.... 우주와 빛과 어둠에 관한 주제에서 파생된 이야기다. 이토 준지의 만화는 그 배경이 동네 골목 깊숙한 끝에 위치한 으슥한 저택 같은 게 어울리는데 말이다. 내 뇌가 무뎌진 건지 예전만큼의 느낌은 아니었다. 그래서 이토 준지의 다른 만화책 '인간실격 1, 2, 3권'을 주문했다. 오늘 택배로 도착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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