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일기 (2019년 이후)/배달대행 알바 도전일기

배민 커넥트 자전거 아르바이트 여덟 번째 날, 일요일 낮에 4시간 정도 하고 4만 4천 3백 원 수입

manwon 2020. 9. 19.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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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월 19일 일요일 - 배달대행 알바 도전 일기


집을 나서기 전 '미세미세' 앱을 보니 초미세먼지가 '최악' 수준이다. KF94 마스크를 챙긴 후, 전철을 타고 배달지에 도착하니 오후 12시가 조금 넘었다. 일요일 점심 때라 주문이 폭주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첫 콜을 잡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다. 콜이 스마트폰에 뜨자마자 사라지는 경우가 대부분. 역 주변을 배회하다 드디어 첫 주문을 잡았다. 

첫 배달은 커피 전문점이었다. 가게에 도착하니 다른 라이더가 자신이 배달해야 할 음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막상 테이블에는 손님이 1명도 없었다. 이렇게 2층에 있는 작은 커피 전문점에서 이 시간대 손님이 없는 건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오히려 이렇게 스마트폰으로 간단하게 배달되는 시스템으로 인해, 가게에서 추가 매출을 올릴 수 있게 된 게 아닐까 생각도 들었다. 

두 번째 배달도 커피 전문점이었다. 픽업을 위해 페달을 밟는데 진눈깨비가 오기 시작했다. 우비를 준비하지 않았기에 버틸 수 있는 데까지 버티다 정 안 되겠다 싶으면 돌아가야겠다 생각했다. 점퍼가 꽤 젖었고 스마트폰 거치 가방의 비닐에 습기와 김이 차서 배민 앱과 내비게이션 화면이 잘 보이지 않게 됐다. 인근 대단지 아파트가 전달지였다. 배달을 마치고 하늘을 보니 진눈깨비 떨어지는 모습이 꽤 멋졌다. 사진을 1장 찍을까 하다 거치 가방에서 스마트폰 꺼내기가 귀찮아서 포기. 다행히 진눈깨비는 1시간 정도 오다 그쳤다.

세 번째 배달은 파스타 같은 걸 파는 음식점이었다. "안녕하세요 배달의 민족입니다" 했더니 "조금 있어야 나오니 밖에 나가 있으세요" 한다. 보통 가게가 협소한 경우 내가 알아서 밖에서 대기하고 있겠다 말하고 나와 있는 편이다. 그런데 상대방에게 먼저 그 말을 들으니 기분이 썩 유쾌하지는 않았다. 밖에서 기다리다 나처럼 자전거로 배민 커넥트를 하는 청년을 만나 잠시 대화를 나눴다. 집이 이 근처라 하는데 하루에 보통 10개~15개 정도 한다고 한다. 묶어서 가는 배달도 하냐고 물으니 종종 묶어서도 간다고 한다. 그러면 배달 음식이 식지 않는지 물을까 하다가 오지랖이 될 것 같아서 말았다. 바위가 잔뜩 있는 큰 산 밑에 위치한 아파트로 음식을 배달했다.

네 번째 배달은 삼계탕을 파는 음식점이었다. 전달지는 10분 정도 거리에 위치한 대단지 아파트였다. 오늘은 참 운이 좋다. 첫 배달부터 네 번째 배달까지 내가 선호하는 평지 지역 내에서만 주문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내가 선호하는 이 지역은 대단지 아파트가 많고 음식점도 많다. 그래서 배달하기에 꽤 편한 편이다. 

다섯 번째 배달은 햄버거 전문점이었다. 이 배달은 내가 선호하지 않는 강 건너 지역으로 가는 배달이다. 꽤 폭이 넓은 강이 있고 그 위에 다리가 있다. 그 다리 양쪽에는 자동차 전용도로다. 나는 내비게이션 설정을 '차'로 해 놓고 있다. 자전거로 설정하면 가끔 자전거 전용도로로 길 안내가 되는데, 오히려 이 코스가 삥 돌아가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차'로 설정해 놓고 있는데, 이게 또 문제가 되는 게, 자칫하면 자동차 전용도로로 진입하는 실수를 범하게 되기 때문이다. 여하튼, 가방에 햄버거를 넣고 그 다리를 건너서 이 아파트를 찾는 과정도 네비가 자동차 전용도로 쪽으로 안내를 해서 하마터면 곤란한 일을 겪을 뻔했다. 

여섯 번째 배달은 돈가스 집이었다. 음식을 픽업하기 위해서 다시 다리를 건너서 내가 선호하는 지역으로 간 후, 음식을 픽업하고 다시 다리를 건너서 내가 선호하지 않는 지역으로 가는 배달 건이었다. 저번에도 이런 콜이 2개 연달아 들어오더니 오늘도 이러네. 아마 나뿐만 아니라 다른 라이더들도 이런 콜을 선호하지 않기 때문에 그 남겨진 콜이 내게 배정된 것 같다. 2개 연달아 이런 콜을 맡으면 정신적, 체력적 소모가 상당하다. 그러니까 조금 쉽게 설명하면 이런 식이다.

A를 내가 선호하는 지역, ||는 다리, B를 내가 선호하지 않는 지역이라고 가정하자.

1. A 음식점 -> || -> B 전달지 (배달 1건 완성, 다음 콜은 A지역의 음식점이 뜸. B지역은 음식점이 별로 없기 때문)
2. B 전달지 -> || -> A 음식점 (위의 이유로 A 지역 음식점에서 픽업)
3. A 음식점 -> || -> B 전달지 (배달 2건 완성, 다음 콜을 잡기 위해 A로 건너가야 함. 왜냐 A지역에 음식점이 많거든)
4. B 전달지 -> || -> A 지역 

즉 배달은 꼴랑 2건만 했지만 무려 다리를 4번이나 건너야 한다는 거다. 

일곱 번째 배달은 파스타 등을 파는 서양 음식점이었는데, 배차를 요청하고 주문 내용을 봤는데 아차 싶었다. 왜냐면 배달 음식이 피자였기 때문이다. 자전거로 배달하는 사람에게 제공되는 가방에는 일반적인 크기의 피자가 들어가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배차 요청을 하기 전에 주문 내역에 피자가 들어가 있는지 알아서 잘~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워낙 콜이 뜨자마자 사라지기 때문에 실상은 그런 걸 일일이 확인할 틈이 없다. 그냥 콜이 뜨면 그 즉시 터치하고 그다음 화면에 나오는 배차 버튼을 숨도 쉬지 않고 누르게 된다. 그렇지 않으면 콜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배민 전산 차원에서 자전거를 이용하는 커넥터에게는 피자가 들어가지 않은 콜만 보내주면 좋을 것 같은데 아직까지 그런 기능은 없는 것 같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음식점에서 피자를 받았는데 다행히 내 배달가방에 딱 들어가는 스몰 사이즈의 피자! 안도의 한숨에 엔돌핀이 샘 솟는다. 

여덟 번째 배달은 다시 비선호지역으로 다리를 건너가는 콜이었다. 음식점은 햄버거 전문점이었는데 오늘 다섯 번째로 배달한 그 집이다. 이 집 햄버거 맛이 괜찮은가 보다. 전달지는 다리를 건너고 지하차도를 건너고 다시 오르막 길을 올라서 도착한 신축 아파트였다. 브랜드 밸류가 꽤 있는 아파트였는데 이제 막 입주를 시작한 것 같다. 군데군데 비어 있는 짜장면 그릇이 보이고 엘리베이터 안에는 아직 비닐도 뜯지 않은 상태였다. 무엇보다 신축 아파트는 그 특유의 '환경호르몬' 냄새가 난다. 배달을 마치고 꽤 고층 높이에서 주변을 내려 보면서 마치 내가 이 아파트에 입주한 것처럼 상상을 해 봤다.   

오늘은 이렇게 8건을 배달하고 총 44,300원을 벌었다. 점심 12시 정도부터 오후 4시 정도까지 배달했는데 이 정도면 만족한다. 우천할증에 무슨 프로모션까지 더해서 1건에 최고 6,100원의 수당을 받은 것도 있다. 그런데 몸이 꽤 피곤했다. 배달이 다 끝날 무렵부터 배도 고프고 머리도 좀 멍했다. 그래서인지.... 치명적 판단 미스를 저지르게 된다.

배달을 마치고 전철역으로 가야 하는데 코스 1은 현 위치에서 산을 넘어야 한다. 코스 2는 내가 그렇게 싫어하는 다리를 건넌 후 북으로 10분 정도 가다가 다시 다리를 건너고 지하차도를 지나야 한다. 코스 2는 이미 내가 몇 번 다녀서 길을 잘 알지만 다리를 2번이나 건너야 하는 게 영 맘에 들지 않는다. 대신 산을 넘는 코스 1은 초행이지만 다리를 건너지 않고 I자 코스로 쭉 일직선 오르막을 올랐다, 그 다음부터는 쭉 내리막이다. 다리를 2번 건너야 하는 ㄷ자 코스를 선택할 것인지 산 하나만 넘으면 되는 I자 코스를 선택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산을 넘어야 하는 I자 코스를 선택했다. 결과는 대실패. 가뜩이나 체력이 방전된 상태에서 만난 오르막은 생각보다 길었다. 우한 폐렴 & 초미세먼지 때문에 쓰고 나간 KF94 마스크는 이미 나의 뜨거운 입김에 모두 젖어 행주가 되었다. 헉헉 숨을 쉴 때마다 마스크 안쪽에서 턱으로 물이 뚝뚝 떨어졌다. '아 전기 자전거였으면....'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뭐? 운동도 하고 돈도 번다고?'

전철역에 힘들게 도착했다. 전철 플랫폼 벤치에 앉아 있는데, 전철이 또 더럽게 안 온다. 

 

배달 나가기 전 미세미세 앱을 보니 미세먼지가 최악. 절대 나가지 말라네.

 

그래도 마스크 쓰고 다녀 와야지.

 

전철 안에 사람이 그렇게 많지는 않았다.

 

중간에 공원에서 좀 쉬다가 찍은 사진. 

 

배달하다가 찍은 사진 1.

 

배달하다 찍은 사진 2.

 

집에 가기 위해 전철을 기다린다. 

 

자정이 넘은 시각. 계란 후라이 2개를 먹는다.

 

계란들아! 나의 지친 허벅지 근육들을 위로해 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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