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는 일기장에

[일기] 겨울 십자매 백열등 신문배달 young man's fancy

manwon 2010. 11. 16. 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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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1월 15일

책상 위에 백열등 스탠드가 있다.
실은 그것은 사람용이 아니고 조류용이다.

한 일년쯤 전인가 어머님이 친구분에게서 십자매 3마리를 얻어오셨다.
그 분이 3마리를 주신 이유는 십자매는 암수 구분이 힘들기 때문이다.
2마리를 키우다가 서로 동성이라 알이 생기지 않을수도 있기에 '옛다 한마리 더, 혹시 모르니..'
였을 것이다.

2번 십자매가 1번 십자매 곁에 3번 십자매가 접근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기 시작했다.
정도가 심해지더니 3번의 뒷꽁무니를 쪼아 깃털을 뽑아 놓았다.
부상이 심했던지 잘 날지도 못하고 얼이 빠지고 두려운 듯 보였다. 

사랑의 삼각관계에서 상처를 입은 3번을 위해서 새장을 하나 더 사서 분리시켰다.
죽을 것 처럼 보였기에 생각을 해봤다.
'동물병원에서 새도 진료하나...?'
'빨간약을 발라줘야 하나...?'
죽음을 앞에 두고 있는데 방치할 수는 없었다.

인터넷으로 알아보니 십자매의 경우 백열등으로 체온을 올려주면 회복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사서 달아주니 왠걸 꼼짝도 않고 숨만 쉬던 놈이 비틀거리며 좀 걷다가 날개짓까지 한다.
토요일 저녁 술약속이 있어서 나가야 됬고 집에는 여차저차 하니 이것 끄지 말라고 당부를 해놨다.
추운 겨울이라 술 맛 좋았고 다음날 아침에 들어왔다.

3번은 죽었다.

할머님이 전기값 나간다고 불을 끄셨다고 한다.
워낙 주관이 뚜렷하신 분이니..
새의 죽음과 불효를 저울질 했고,  뭐라 싫은 소리 하지 않았다.

백열등은 내 책상에 설치를 해놨다.
노리끼리한 불빛색은 마음을 좀 편하게 하지만, 거의 켜지는 않았다.
백열등은 뜨거운 만큼 전기값이 많이 나가기 때문이다.

아주 오래전 옛날에 그러니까 고등학교를 갓 졸업했을 때 같다.
그 때 새벽에 신문배달을 했다.
6층으로 만든 연립을 1시간 40분 가량 돌리고 자전거를 타고 15분 정도 이동을 해서 또 그러한 연립들을 돌리는 코스였다.
그 당시 6층으로 된 연립은 허가는 5층으로 하고 불법적으로 6층으로 만든 것들이었다.
즉 6층이지만 엘리베이터는 없다.
대충 4시간 동안 6층 계단만 오르락 내리락 하고 집에 들어오면 몸이 너무 뜨거워서 겨울에 냉수로 샤워를 하면 욕실창에 김이 잔뜩 낄 정도 였다.

중간에 5분 정도 쉬며 앉아 담배를 태우는 장소가 있었다.
커피자판기에서 한잔 뽑고 한대 빨고 고개를 들면 한 집의 창문이 유독 새벽 내 붉은 백열등이 켜져 있었다.
흘린 땀이 식어서 추워질 때 그것을 바라보면 왠지 기분이 따뜻해졌다.

아마도 저 창문 너머는 신혼부부가 살고 있을 것이라 단정지었다.
품에 안고 잠이 들어 더운 방이 붉은 백열등으로 더해 온통 불타오르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손 시려 뒤지겠는데.. 


Young man's fancy
fancy - n. 공상.상상.바람.욕망.
해석하자면 어린 놈의 욕망 ? ㅎㅎ
원래는 George Winston - Young man's fancy가 더 생각나는데.. youtube에 없다.


그 후로 몇 년을 더 배달을 했다.
마지막에는 오토바이를 타고 비교적 쉬운 단독주택 지역을 돌렸다.
아침에 일이 끝나면 보급소 총무 형과 라면도 끓여 나눠 먹는 위치까지 올랐다.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한다지만, 너무 오래하는 것은 좋지 않다.
그 일을 관두고도 한참이나 나중에 깨달았다.













아 !
1번과 2번 십자매는 서로 올라타지 않는다.
동성인 것 같다.
알도 안 생긴다.

지금 일기는 백열등을 켜놓고 썼다.
빨리 끄고 자야지.
잇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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